Chapter 01

칩 한 개가 지나는 길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는 칩이 수십 개 들어 있다. 그중 가장 비싼 칩 하나를 골라 거꾸로 따라가 보자. 미국 회사가 만든 설계 도구로 미국 회사가 설계하고, 네덜란드·미국·일본의 장비와 일본의 소재로 대만의 공장이 웨이퍼에 새긴다. 대만이나 동남아에서 포장하고 시험한 칩은 중국·인도·베트남의 조립 공장에서 휴대폰 안에 들어간다. 칩 한 개가 손에 오기까지 여러 나라의 수백 개 회사를 거친다. 이 장은 그 길 전체를 한 장의 지도로 펼친다. 누가 어느 칸을 맡는지, 돈은 어디서 생기고 어디에 쓰이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를 먼저 훑어 두면 나머지 장은 이 지도의 한 칸씩을 확대해서 보는 일이 된다.

손안의 칩 열 개

스마트폰 뒷판을 열면 배터리 옆의 좁은 기판 위에 손톱만 한 칩들이 빽빽하다. 가장 큰 것이 AP(Application Processor)다. CPU·GPU·인공지능 연산 장치를 한 조각의 실리콘에 담은 휴대폰의 두뇌다. 그 위에는 작업 메모리 DRAM이 포개져 있고, 옆에는 사진과 앱을 담는 NAND 저장장치, 전파를 다루는 모뎀과 RF 칩, 전력을 나눠 주는 전원 관리 칩,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가 있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칩을 하나씩 눌러 보자. 오른쪽 버튼으로 칩의 색을 설계한 곳과 만든 곳 기준으로 바꿀 수 있다. 같은 칩이라도 두 색이 다르면 설계와 제조가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SIMULATOR

스마트폰을 열면: 칩 열 개의 출신지

칩이나 막대를 누른다
미국대만한국일본유럽중국
칩을 누르면 설명이 여기에 나온다.
선택한 칩—
칩 원가 합계 (약)—
기기 부품 원가 중 칩—
관여 지역 (설계 / 제조)—
해볼 것: ① 색 기준을 '설계한 곳'과 '만든 곳'으로 번갈아 눌러 AP·모뎀·Wi-Fi 칩의 색이 미국에서 대만으로 바뀌는 것을 본다. ② DRAM과 이미지 센서는 색이 바뀌지 않는다. 설계한 회사가 자기 공장에서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③ 막대 그래프에서 AP 한 개가 칩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것을 확인한다. (2024년 플래그십 스마트폰 한 대 기준. 공개 분해 보고서의 언론 보도치를 반올림·단순화한 교육용 근사다. 회사는 대표적인 공급사만 적었고 실제 모델마다 다르다. 기기 부품 원가(BOM)는 약 530달러로 잡았다.)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첫째, 설계하는 회사와 만드는 회사가 대부분 다르다. AP·모뎀·Wi-Fi 칩은 미국 회사가 설계하지만 실제로 실리콘에 새기는 곳은 대만의 파운드리(Foundry)다. 반대로 메모리와 이미지 센서는 설계한 회사가 자기 공장에서 직접 만든다. 공장을 갖는 쪽과 빌리는 쪽, 두 사업 방식의 차이가 4장의 주제다.

둘째, 칩이 기기 원가의 절반 안팎을 차지한다. 2024년 플래그십 스마트폰 한 대의 부품 원가는 공개 분해 보고서 기준 약 500달러대이고, 그중 칩이 약 280달러다. 나머지는 디스플레이·배터리·카메라 렌즈·케이스·조립비다. 칩이 비싼 부품이 된 지는 오래되었고, 기기 하나에 들어가는 칩의 값은 해마다 늘고 있다. 기기 한 대의 칩 함량은 12장에서 더 자세히 본다.

부품 원가와 판매가는 다르다 분해 보고서가 말하는 '원가'는 부품을 사 오는 값의 추정치다. 연구개발비, 소프트웨어, 마케팅, 유통 마진은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1,000달러짜리 휴대폰의 부품 원가가 500달러대로 나온다. 칩 회사 쪽에서 보면 반대다. AP 하나를 약 100달러에 팔 때 그 안의 실리콘 원가는 훨씬 작다. 이 차이가 어디로 가는지는 이 장 뒤쪽의 가격 분해에서 본다.

여섯 단계: 칩이 지나는 길

AP 하나를 거꾸로 따라가면 여섯 단계가 나온다. 이 책은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간다. 화면 맨 위의 띠도 같은 여섯 칸이다.

  1. 1설계 도구·IP: 칩을 그리는 소프트웨어(EDA)와 미리 만들어 둔 회로 블록(IP)을 판다. 세 회사가 시장 대부분을 갖는다. 5장
  2. 2칩 설계: 무엇을 계산할 칩인지 정하고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배치한다. 공장이 없는 팹리스(Fabless)가 주인공이다. 6장
  3. 3장비·소재: 공장을 채우는 노광기·식각기·증착기와 웨이퍼·가스·화학 약품. 품목마다 몇 회사가 나눠 갖는다. 7장 · 8장
  4. 4웨이퍼 제조: 설계도를 실리콘 원판 위에 새긴다. 공정 단계가 1,000개를 넘고 공장 하나가 수백억 달러다. 9장 · 10장
  5. 5패키징·테스트: 웨이퍼를 잘라 다이를 포장하고 시험한다. 첨단 패키징이 성능을 좌우하면서 다시 주목받는다. 11장
  6. 6시장: 완성된 칩이 스마트폰·서버·자동차에 들어가 팔린다. 2024년 세계 반도체 매출은 약 6,300억 달러다. 2장 · 12장

아래에서 웨이퍼 하나가 여섯 단계를 지나는 동안 칩의 값이 어떻게 쌓이는지 보자. 단계를 누르면 그 단계의 대표 회사와 이 책에서 그 단계를 다루는 장이 나온다.

SIMULATOR

여섯 단계를 지나며 쌓이는 값

단계를 누른다
단계를 누르면 대표 회사가 여기에 나온다.
웨이퍼가 있는 곳—
지금까지 쌓인 값 (부가가치 누적)—
선택한 단계—
그 단계의 1위 지역—
해볼 것: ① 웨이퍼가 2단계(칩 설계)를 지날 때 누적 값이 한 번에 절반을 넘는 것을 본다. ② 막대 기준을 '설비투자'로 바꾼다. 이번에는 4단계(웨이퍼 제조)가 가장 높다. 값을 많이 만드는 곳과 돈을 많이 쓰는 곳이 다르다. ③ 단계를 하나씩 눌러 대표 회사와 1위 지역이 단계마다 바뀌는 것을 확인한다. (부가가치·설비투자·R&D 비중은 SIA·BCG가 2021년에 발표한 2019년 근사치(IND.SEGMENTS)다. 설계 단계는 로직·아날로그·메모리 설계를 합쳤다. 설비투자는 원자료의 합이 100을 조금 넘는다. 실제 칩은 단계 사이를 여러 번 오가고, 장비·소재는 칩이 아니라 공장으로 간다.)

값이 쌓이는 모양이 고르지 않다. SIA·BCG의 2019년 추정으로 산업 전체 부가가치의 약 55%가 설계에서 나온다(로직 약 29%, 아날로그·개별 소자 약 17%, 메모리 약 9%). 웨이퍼 제조는 약 19%, 장비와 소재는 합쳐 약 16%, 패키징·테스트는 약 6%다. 설계 도구·IP는 약 4%에 그치지만, 이것이 없으면 아무도 설계를 시작하지 못한다.

설비투자로 바꾸면 그림이 뒤집힌다. 웨이퍼 제조 한 단계가 산업 설비투자의 약 64%를 쓴다. 설계는 사람과 소프트웨어로 값을 만들고, 제조는 공장과 장비로 값을 만든다. 같은 산업 안에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사업이 들어 있다.

산업 지도 한 장

이제 회사들을 한 장에 올려 보자. 이 책에 나오는 회사 약 90곳을 단계별 열에 세우고, 2024년 매출로 원의 크기를, 본사 지역으로 색을 정했다. 원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 회사 설명이 뜨고, 누르면 아래 패널에 같은 단계 안에서의 순위가 나온다. 위쪽 버튼으로 한 지역만 남겨 볼 수 있다.

SIMULATOR

반도체 산업 지도: 누가 어느 칸에 있는가

원을 누르거나 올려 본다
미국대만한국일본중국유럽동남아기타
원을 누르면 회사 설명과 같은 단계 안의 순위가 여기에 나온다.
보이는 회사—
매출 합 (2024, 약)—
지도 전체 매출 중—
가장 큰 회사—
해볼 것: ① '대만'을 누른다. 원은 몇 개 안 되지만 파운드리 열의 TSMC가 압도적이다. ② '일본'을 누른다. 큰 원은 거의 없고 장비·소재 열에 중간 크기 원이 고르게 퍼져 있다. ③ '한국'을 누르면 메모리 열의 두 원이 대부분이고 설계·장비 열은 비어 있다. ④ 원이 작은 회사(아지노모토, 레이저텍)를 눌러 메모를 읽는다. 작다고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매출은 2024년 회계연도 기준 반도체·해당 사업부 매출을 반올림한 근사치(IND.COMPANIES)로, 회사마다 회계연도와 사업 범위가 다르다. 삼성전자 원은 DS 부문 전체라 파운드리 원과 일부 겹친다. 애플·라피더스처럼 칩을 외부에 팔지 않거나 아직 매출이 없는 회사는 가장 작은 점으로 그렸다. 원의 넓이가 매출에 비례한다.)

큰 원 다섯 개가 먼저 보인다. 2024년 매출 기준으로 엔비디아(약 1,240억 달러), TSMC(약 900억 달러),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약 810억 달러), 인텔(약 530억 달러), SK하이닉스(약 480억 달러)다. 다섯 회사가 다섯 가지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번다. 엔비디아는 설계만 하고, TSMC는 남의 설계를 만들어 주기만 하며, 삼성전자는 둘 다 하고, 인텔은 설계와 제조를 한 회사 안에 두며, SK하이닉스는 메모리만 만든다.

장비와 소재 열은 원이 작지만 개수가 많다. 그리고 작은 원 하나가 산업 전체를 멈출 수 있다. ASML은 첨단 노광기인 EUV를 세계에서 혼자 만든다. 패키지 기판의 절연 필름은 아지노모토 한 회사가 사실상 전부 공급한다. 매출은 약 5억 달러로 지도에서 점에 가깝다. 이런 병목은 7장과 8장에서 집중도로 잰다.

매출 순위를 읽을 때 조심할 것 회사마다 회계연도가 다르고(엔비디아는 1월, 마이크론은 8월에 끝난다), 무엇을 반도체 매출로 치는지도 다르다. 삼성전자 숫자는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를 모두 합친 부문 매출이다.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칩을 설계하는 회사 가운데 하나지만 칩을 외부에 팔지 않아 매출이 0으로 잡힌다. 순위는 산업의 모양을 보는 데 쓰고, 소수점 차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단계마다 1등이 다르다

지도를 지역 색으로 다시 보면 칸마다 주인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아래 표는 단계별 부가가치를 지역별로 나눈 것이다. 칸을 누르면 그 지역이 선택되고, 그 지역이 1등인 단계와 가장 약한 단계가 나온다. '전체 기여'로 바꾸면 각 칸에 그 단계의 크기(부가가치 비중)를 곱한 값, 즉 산업 전체에서 그 칸이 차지하는 몫이 나온다.

SIMULATOR

단계 × 지역 점유율 지도

칸을 누른다
칸을 누르면 그 지역의 강점과 빈칸이 여기에 나온다.
선택한 지역—
산업 전체 부가가치 점유—
1등인 단계—
가장 약한 큰 단계—
해볼 것: ① 한국을 고른다. 메모리 설계 칸은 진하지만 EDA·IP와 장비 칸은 거의 비어 있다. ② 대만을 고르면 웨이퍼 제조에서, 중국을 고르면 패키징·테스트에서 1등이다. 굵은 테두리가 각 단계의 1등이다. ③ '전체 기여'로 바꾼다. 미국의 로직 설계 칸 하나가 산업 전체의 약 20%로, 다른 어떤 칸보다 크다. 맨 아래 행은 지역별 합계다. (SIA·BCG 2021 보고서의 2019년 부가가치 점유를 반올림한 근사(IND.SEGMENTS). 동남아는 '기타'에서 따로 떼어 낸 추정이다. 회사 본사 기준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생긴 곳 기준이다. 2019년 이후 대만·한국의 제조 비중과 미국의 AI 설계 비중은 더 커졌다.)

단계마다 1등이 다르다. 미국은 EDA·IP와 로직 설계, 장비에서 1등이고, 한국은 메모리, 대만은 웨이퍼 제조, 중국은 패키징·테스트에서 1등이다. 일본은 1등 칸은 적지만 장비와 소재에서 크게 2~3등을 지키고, 유럽은 EDA·IP와 장비에서 존재감이 크다. 산업 전체로 합치면 미국이 약 39%, 일본이 약 14%, 한국이 약 12%, 유럽·대만·중국이 각각 약 10%다(2019년).

그래서 어느 지역도 혼자서 첨단 칩을 만들 수 없다. 미국은 설계하지만 첨단 공정 제조를 대만에 기대고, 대만은 제조하지만 장비를 미국·네덜란드·일본에서 사 온다. 서로 기대는 구조가 효율을 만들었고, 동시에 한 곳이 멈추면 모두가 멈추는 위험도 만들었다. 이 구조가 13장의 지리, 14장의 정책 이야기로 이어진다. 한국의 칸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는 15장에서 본다.

돈을 버는 곳과 돈을 쓰는 곳

같은 산업 안에서도 단계마다 돈을 버는 방식이 다르다. 아래 세 기둥은 산업 전체의 부가가치, 설비투자, 연구개발비를 단계별로 쌓은 것이다. 띠를 따라가면 한 단계가 세 기둥에서 얼마나 굵어지고 가늘어지는지 보인다. 띠나 기둥을 누르면 그 단계가 강조된다.

SIMULATOR

부가가치, 설비투자, R&D는 어디에 쏠리는가

띠나 기둥을 누른다
띠를 누르면 그 단계의 설명이 여기에 나온다.
선택한 단계—
부가가치 / 설비투자 / R&D—
설비투자 ÷ 부가가치—
R&D ÷ 부가가치—
해볼 것: ① 웨이퍼 제조 띠를 누른다. 부가가치에서는 가는 띠가 설비투자에서 기둥의 절반 넘게 부푼다. ② 로직 설계 띠는 반대로 부가가치에서 굵고 설비투자에서 거의 사라진다. ③ EDA·IP 띠는 부가가치에서 가장 가늘지만 R&D에서는 가장 굵다. 매출의 큰 몫을 다시 연구개발에 쓰는 사업이다. (SIA·BCG 2021 보고서의 2019년 근사치(IND.SEGMENTS). 원자료의 설비투자·R&D 비중은 합이 100을 조금 넘어서, 기둥의 높이는 합을 100으로 맞추고 숫자는 원자료 값을 그대로 적었다. 메모리·아날로그 회사의 공장 투자 일부가 설계 칸에 잡혀 있다.)

세 기둥을 나란히 놓으면 세 가지 사업 유형이 보인다. 설계는 부가가치가 크고 설비투자가 작다. 사람과 소프트웨어로 값을 만든다. 제조는 설비투자가 부가가치보다 몇 배 크다. 공장 하나에 200억 달러가 들고, 그 돈의 4분의 3이 장비 값이다. EDA·IP와 장비는 R&D 비중이 부가가치 비중보다 훨씬 크다. 남보다 먼저 다음 세대 도구를 내놓지 못하면 시장을 잃는다.

이 차이가 산업의 모양을 정한다. 설비투자가 무거운 사업은 가동률이 떨어지면 바로 적자가 나므로 경기에 민감하다(3장). 설계 회사는 공장을 짓지 않고 빌려 쓰는 쪽을 택했다(4장). 같은 이유로 제조는 점점 몇 회사로 모였다. 3 nm 공장을 지을 수 있는 회사는 세계에 몇 곳뿐이다(9장).

설계 2년, 제조 석 달

칩 하나를 시장에 내놓는 데 얼마나 걸릴까. 첨단 칩은 사양을 정하는 데서 시작해 첫 제품을 고객에게 보내기까지 보통 2년 반에서 3년이 걸린다. 그 대부분은 설계와 검증이다. 아래 일정표에서 재생을 누르고, 공정 노드와 급행 여부를 바꿔 보자. '새 팹이 필요하다'를 켜면 공장이 없어서 지어야 하는 경우가 된다.

SIMULATOR

칩 하나가 시장에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막대를 누른다
막대를 누르면 그 단계에서 무엇을 하는지 여기에 나온다.
경과—
지금 하는 일—
설계 시작 → 첫 출하—
팹 안에 머무는 기간—
해볼 것: ① 재생을 누르고 막대가 채워지는 속도를 본다. 설계·검증 막대가 끝날 때까지 2년이 넘게 걸린다. ② '테이프아웃 이후'로 바꾸면 제조와 후공정만 확대된다. 웨이퍼 제조가 그중 가장 길다. ③ 노드를 28 nm에서 2 nm로 바꾼다. 마스크 층이 늘어 팹 안 기간이 길어진다. 급행 로트를 켜면 줄지만 비용이 크게 든다. ④ '새 팹이 필요하다'를 켠다. 공장 건설(약 3년)이 설계보다 길어서 첫 출하가 1년 가까이 밀린다. (교육용 근사 일정. 웨이퍼 제조 기간 = 마스크 층 수(IND.NODES) × 층당 약 1.1일(급행 0.6일) + 10일. 설계 단계 기간은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범위의 대표값이고, 첫 시제품에서 문제가 나와 다시 만드는 경우(리스핀)는 넣지 않았다.)

일정의 무게 중심은 앞쪽에 있다. 사양 결정과 설계·검증이 2년을 넘게 차지하고, 설계가 끝나 데이터를 공장에 넘기는 테이프아웃(Tape-out) 뒤로는 반년 남짓이다. 그 반년 가운데 가장 긴 것이 웨이퍼 제조다. 3 nm급 웨이퍼는 마스크 약 90장을 차례로 찍으며 공정 1,000여 단계를 지나는데, 이 모든 것에 석 달 안팎이 걸린다. 공정 하나하나는 몇 분이지만 장비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첨단 팹은 부지 공사에서 첫 웨이퍼까지 보통 2~3년, 장비 주문 리드타임만 1년이 넘는다. 수요가 늘었다고 바로 생산을 늘릴 수 없는 이 시간차가 반도체 경기를 출렁이게 만드는 원인이다. 3장에서 이 지연을 직접 돌려 본다. 공정 단계 하나하나가 무엇인지는 시리즈의 ProcessBook이 다룬다.

칩값은 어디로 가는가

칩 하나를 팔면 그 돈은 어디로 갈까. 파운드리에 웨이퍼 값을, 패키징 회사에 포장비를, 설계 도구와 IP 회사에 사용료를 내고, 남는 돈으로 설계에 들인 비용을 갚는다. 개당 비용은 대략 이렇게 쓸 수 있다.

$$\begin{aligned}\text{개당 비용} &\approx \text{다이 원가} + \text{패키징} + \text{테스트} + \frac{\text{설계비(NRE)}}{\text{판매량}} \\[6pt] \text{다이 원가} &= \frac{\text{웨이퍼 가격}}{\text{웨이퍼당 좋은 다이 수}}\end{aligned}$$
NRE(Non-Recurring Engineering)는 한 번만 드는 설계·마스크 비용이다. 다이 원가는 9장, 설계비 회수는 6장에서 자세히 계산한다.

마지막 항이 핵심이다. 설계비는 판매량으로 나눠지므로, 많이 팔면 개당 몫이 거의 사라지고 적게 팔면 판매가를 넘어선다. 아래에서 칩 종류를 고르고 판매량을 끝까지 줄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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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 한 개 값의 분해: 판매량이 줄면 무너진다

막대에 올려 본다
개당 남는 몫—
판매가 대비—
개당 설계비 상각—
손익분기 판매량—
해볼 것: ① 스마트폰 AP에서 판매량을 5,000만 개에서 100만 개로 줄인다. 설계비 상각 막대가 판매가를 넘어서고 남는 몫이 빨간색 적자로 돌아선다. ② AI 가속기 AX-1을 고른다. 다이 원가보다 HBM 메모리가 훨씬 크고, 판매가가 원가의 몇 배라 판매량을 한참 줄여야 적자로 돌아선다. ③ 차량용 MCU는 개당 몇 달러짜리 칩이다. 설계비가 작아도 1억 개 단위로 팔아야 남는다. (교육용 모델. 다이 원가는 IND.dieCost로 계산했다: AP는 3 nm 110 mm², AX-1은 3 nm 806 mm², MCU는 40 nm 20 mm², 결함 밀도 0.1 /cm², 머피 수율. 설계비는 IND.NODES의 노드별 추정치와 IND.AX1을 썼다. 판매가는 공개 보도치를 반올림한 가정이다. '남는 몫'은 영업비·세금을 빼기 전 값이다.)

세 칩의 모양이 전혀 다르다. 스마트폰 AP는 판매가의 약 3분의 1이 실리콘과 포장에 들고, 나머지는 설계비를 갚고 남는 몫이다. 수천만 개를 팔기 때문에 6억 달러 가까운 설계비가 개당 10달러 남짓으로 묽어진다. 판매량을 수백만 개로 줄이면 같은 설계비가 개당 100달러를 넘어 적자로 돌아선다. 첨단 공정 칩을 낼 수 있는 회사가 적은 이유다.

AI 가속기는 원가의 큰 몫이 로직 다이가 아니라 함께 포장되는 HBM 메모리다. 판매가가 원가보다 훨씬 높아 판매량이 줄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차량용 MCU는 반대로 개당 몇 달러의 세계다. 성숙 공정이라 설계비가 작고, 대신 1억 개 단위로 오래 판다. 같은 '반도체'지만 사업의 생김새가 이만큼 다르다.

이 책이 따라갈 칩: AX-1

이 책은 장마다 같은 칩 하나를 붙잡고 간다. 가상의 팹리스 노바실리콘(미국)이 설계하는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AX-1이다. 실제 회사나 제품과는 무관하다. 각 장은 자기가 맡은 단계에서 AX-1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엇을 정해야 하는지를 계산해서 장 끝의 타깃 파일에 적는다.

26 × 31 mm다이 806 mm². 노광 한계 26 × 33 mm 안
3 nm급첨단 로직 공정
HBM 6스택스택당 24 GB, 총 144 GB
2.5D실리콘 인터포저 위에 다이와 HBM을 나란히
약 1,000 W칩 하나의 소비 전력
$25,000판매가. 첫해 목표 40만 개

이 칩이 시장에 닿으려면 여섯 단계를 모두 지나야 한다. 첫 질문은 단순하다. AX-1 하나에 몇 나라가 손을 대는가? 아래에서 먼저 예상을 고른 다음 재생을 눌러 경로를 따라가 보자.

SIMULATOR

AX-1은 몇 개 지역을 거치는가

단계를 누른다
재생하거나 단계를 누르면 그 단계의 설명이 여기에 나온다.
단계—
지금까지 관여한 지역—
누적 이동 거리 (직선, 약)—
예상과 비교—
해볼 것: ① 예상 지역 수를 고르고 재생한다. ② 대만에서 네 단계가 이어지는 구간을 본다. 웨이퍼 제조, 패키징, 테스트, 서버 조립이 한 섬에 몰려 있다. ③ 끝까지 재생한 뒤 누적 이동 거리를 본다. (가상 칩의 개념적 경로다(IND.AX1.route). 지역은 이 책의 지역 구분(미국·대만·한국·일본·중국·유럽·동남아·기타)으로 센다. 장비·소재는 칩이 아니라 공장으로 가지만 순서상 경로에 넣었다. 거리는 두 지점 사이의 대원 거리 합이다. 나라 단위로 세면 더 많아진다. 국경을 넘는 횟수와 한 지역이 멈출 때 생기는 일은 13장에서 다룬다.)

설계는 미국, 장비는 유럽, 소재는 일본, 제조·포장·조립은 대만, 메모리는 한국. 지역 단위로만 세어도 다섯 곳이다. 설계 센터가 있는 인도, 테스트를 맡을 수 있는 동남아, 서버를 조립하는 멕시코까지 나라로 세면 더 늘어난다. 이 칩 하나를 시장까지 옮기는 과정이 이 책 전체다.

TARGET AX-1타깃 파일 · 1장

AI 가속기 하나를 시장까지 옮겨라

노바실리콘(가상, 미국)은 공장이 없는 팹리스다.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AX-1을 3 nm급 공정으로 설계해 개당 25,000달러에 첫해 40만 개를 팔려고 한다. 다이는 26 × 31 mm(806 mm²)로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최대 크기에 가깝고, HBM 6스택(총 144 GB)과 함께 2.5D 인터포저 위에 포장된다. 소비 전력은 약 1,000 W다.

이 장에서 한 일은 지도를 펼친 것이다. AX-1은 설계 도구·IP → 칩 설계 → 장비·소재 → 웨이퍼 제조 → 패키징·테스트 → 시장의 여섯 단계를 지나고, 경로의 열 걸음은 미국·유럽·일본·대만·한국의 다섯 지역에 걸친다. 노바실리콘이 직접 하는 일은 두 번째 단계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회사, 다른 나라에 맡긴다.

이 장에서 정한 것AX-1의 사양(806 mm², 3 nm급, HBM 144 GB, 2.5D, 1,000 W, 25,000달러, 40만 개)과 지나갈 여섯 단계.
아직 남은 문제이 칩이 들어갈 시장은 얼마나 큰가. 누가 어디서 만들고, 원가는 얼마이며, 몇 개를 팔아야 남는가.
다음 단계2장에서 AX-1이 들어갈 시장의 크기부터 잰다.

핵심 정리

  1. 2024년 플래그십 스마트폰 한 대에는 칩 원가가 약 280달러 들어 있고, 이는 부품 원가의 절반 안팎이다. AP 하나가 그중 약 40%를 차지한다.
  2. 칩은 설계 도구·IP → 칩 설계 → 장비·소재 → 웨이퍼 제조 → 패키징·테스트 → 시장의 여섯 단계를 지난다. 단계마다 주인공 회사가 다르다.
  3. 많은 칩은 설계하는 회사(팹리스)와 만드는 회사(파운드리)가 다르다. 메모리·이미지 센서처럼 한 회사가 설계와 제조를 모두 하는 경우(IDM)도 있다.
  4. 2019년 기준 산업 부가가치의 약 55%가 설계, 약 19%가 웨이퍼 제조, 약 16%가 장비·소재, 약 6%가 패키징·테스트, 약 4%가 EDA·IP에서 나온다. 설비투자는 반대로 웨이퍼 제조에 약 64%가 몰린다.
  5. 단계마다 1등 지역이 다르다. 미국은 설계·EDA·장비, 한국은 메모리, 대만은 웨이퍼 제조, 중국은 패키징·테스트, 일본은 소재·장비에서 강하다. 어느 지역도 혼자 첨단 칩을 만들지 못한다.
  6. 첨단 칩 하나를 시장에 내놓는 데 약 2년 반~3년이 걸리며 대부분이 설계·검증이다. 테이프아웃 뒤 제조·후공정은 반년 남짓이고, 그중 웨이퍼 제조가 약 3~4개월이다. 공장을 새로 지으면 2~3년이 더 든다.
  7. 개당 비용은 다이 원가 + 패키징 + 테스트 + 설계비 ÷ 판매량이다. 판매량이 줄면 설계비 상각이 판매가를 넘어 적자로 돌아선다.
  8. 이 책은 가상의 AI 가속기 AX-1(806 mm², 3 nm급, HBM 144 GB, 25,000달러)을 여섯 단계를 따라 시장까지 옮긴다. 경로는 다섯 개 지역에 걸친다.

확인 퀴즈

SIA·BCG의 2019년 추정에서 반도체 산업 전체 부가가치를 가장 많이 만드는 단계는 무엇인가?

설계 세 갈래를 합치면 약 55%(로직 약 29%, 아날로그·개별 소자 약 17%, 메모리 약 9%)로 절반을 넘는다. 웨이퍼 제조는 약 19%, 장비는 약 11%, 패키징·테스트는 약 6%다.

산업 전체 설비투자의 약 64%(2019년 근사)가 몰리는 단계는?

웨이퍼 제조는 부가가치의 약 19%를 만들지만 설비투자의 약 64%를 쓴다. 공장 하나에 수백억 달러가 들고 그 대부분이 장비 값이기 때문이다. 로직 설계의 설비투자 비중은 약 4%에 불과하다.

첨단 칩 하나를 사양 결정부터 첫 출하까지 만드는 일정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부분은?

사양 결정과 설계·검증이 2년 이상을 차지한다. 테이프아웃 뒤의 제조와 후공정은 반년 남짓이고, 그중 가장 긴 웨이퍼 제조가 약 3~4개월이다. 다만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면 건설 기간(2~3년)이 가장 긴 단계가 된다.

AX-1의 설계비(NRE)는 5억 달러다. 판매량이 목표 40만 개가 아니라 4만 개에 그치면 개당 설계비 상각은 얼마인가?

5억 달러 ÷ 4만 개 = 12,500달러다. 40만 개를 팔 때의 1,250달러보다 열 배 크고, 판매가 25,000달러의 절반이다. 설계비는 판매량으로 나눠지므로 판매량이 줄면 그대로 개당 비용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