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모델: IDM, 팹리스, 파운드리
1980년대까지 반도체 회사는 거의 모두 칩을 설계하고 자기 공장에서 만들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칩을 파는 회사들은 공장이 없고, 가장 앞선 공장을 가진 회사는 자기 칩을 팔지 않는다. 무엇이 산업을 이렇게 둘로 쪼갰는가. 답은 숫자 하나로 시작한다. 선단 팹 한 동이 약 200억 달러이고, 그 돈은 웨이퍼를 만들든 안 만들든 매년 감가상각으로 빠져나간다. 이 장은 그 고정비가 회사의 운명을 어떻게 가르는지 직접 계산한다.
- IDM, 팹리스, 파운드리, OSAT, 팹라이트가 각각 무엇을 갖고 무엇을 빌리는지 말한다.
- 가동률이 떨어질 때 웨이퍼당 원가가 왜 폭증하는지 고정비·변동비로 설명하고 손익분기 가동률을 구한다.
- 수요가 출렁일 때 고정비가 큰 사업이 이익을 더 크게 잃는 이유(영업 레버리지)를 설명한다.
- 자체 팹이 파운드리보다 싸지는 최소 물량이 노드마다 어떻게 다른지 계산한다.
- 수요 불확실성 아래서 IDM과 팹리스의 이익 분포를 비교하고, 팹라이트가 왜 그 중간에 서는지 말한다.
- 노바실리콘이 AX-1을 위해 팹을 짓지 않는 이유를 숫자로 설명한다.
공장을 가질 것인가 빌릴 것인가
칩 하나가 시장에 나오려면 설계, 웨이퍼 제조, 패키징·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사업 모델은 이 세 단계 가운데 무엇을 직접 하고 무엇을 남에게 맡기느냐로 나뉜다.
모델마다 돈의 모양이 다르다. 팹리스의 큰 비용은 사람과 설계비(연구개발비)이고, 공장이 없으니 매출 대비 설비투자가 몇 %에 그친다. 파운드리와 IDM은 매출의 30~50%를 매년 설비에 다시 쏟는다. 아래 지도에 실제 회사들을 그 두 축 위에 올려 보았다.
사업 모델 지도: 공장을 가진 회사는 어디에 있나
왼쪽 위에는 팹리스가, 오른쪽에는 팹을 가진 회사들이 모인다. 왼쪽이 늘 더 좋은 것은 아니다. 팹리스의 이익률은 무엇을 설계하느냐에 따라 크게 갈린다. 오른쪽에서는 같은 IDM이라도 공장을 꽉 채운 회사와 비워 둔 회사가 정반대 자리에 있다. 공장을 가진 회사의 이익은 가동률이 정한다. 이것이 이 장의 출발점이다.
분업의 역사
처음부터 이렇게 나뉘어 있지는 않았다. 1960~70년대에는 공정과 설계가 한 몸이었다. 회로를 그리는 사람이 공정을 알아야 했고, 공정이 바뀌면 설계도 다시 했다. 설계 규칙(Design rule)이라는 약속으로 둘을 떼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공장 없이 설계만 하는 회사가 생길 자리가 만들어졌다.
결정적 사건은 1987년이다. 자기 칩을 만들지 않고 남의 칩만 만들어 주는 회사가 대만에 생겼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팹리스가 안심하고 설계 파일을 넘길 수 있게 했다. 아래 연표를 재생하거나 끌어서 각 사건과 그 뒤 팹리스·파운드리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몫이 어떻게 늘었는지 본다.
분업의 역사: IDM 시대에서 파운드리 시대로
1990년 무렵 팹리스 회사의 매출은 산업의 몇 %에 불과했다. 2024년에는 약 40%다. 같은 기간 파운드리 매출은 산업의 약 5분의 1로 커졌다. 분업이 넓어진 배경에는 팹 한 동의 값이 있다. 200 mm에서 300 mm로, 그리고 EUV 시대로 넘어갈 때마다 팹 값이 뛰었고, 그때마다 팹을 감당하지 못한 회사가 제조를 내려놓았다.
고정비의 무게
팹의 원가는 두 덩어리다. 웨이퍼를 한 장 더 만들 때마다 드는 변동비(Variable cost)(소재·가스·전력·소모품)와, 만들든 안 만들든 매년 나가는 고정비(Fixed cost)(장비 감가상각·인건비·유지비)다. 선단 팹에서는 고정비가 압도적이다. 장비가 투자비의 약 4분의 3이고, 장비는 약 5년에 걸쳐 상각된다.
아래 그래프에서 가동률 표시를 좌우로 끌어 본다. 팹 투자비와 웨이퍼 판매가도 바꿔 본다.
가동률이 떨어지면 웨이퍼 원가는 얼마나 오르나
기본값(투자비 200억 달러, 월 10만 장, 판매가 1만 7천 달러)에서 가동률 90%면 웨이퍼당 원가는 약 6,750달러이고 손익분기 가동률은 약 24%다. 꽤 넉넉해 보인다. 그러나 이 팹이 1만 7천 달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단 공정이기 때문이다. 판매가가 내려가면 손익분기선이 빠르게 오른다. 그리고 원가 곡선은 가동률이 낮아질수록 쌍곡선처럼 치솟는다. 가동률 20%에서는 장당 원가가 2만 달러를 넘는다.
이 구조가 산업의 행동을 설명한다. 팹을 가진 회사는 불황에도 가동률을 지키려 가격을 내린다. 고정비는 어차피 나가니, 변동비보다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면 손실이 줄기 때문이다. 메모리 불황에 가격이 원가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이고(3장, 10장), 파운드리가 고객 수를 늘려 가동률을 평탄하게 만들려는 이유다.
불황은 누구를 더 아프게 하는가
같은 이익을 내는 세 회사가 있다고 하자. 팹리스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파운드리에 웨이퍼 값으로 내고(변동비), 고정비는 작다. 파운드리와 IDM은 고정비가 크고 변동비는 작다. 수요가 출렁이면 어떻게 되는가. 고정비 비중이 클수록 매출이 조금 줄어도 이익이 크게 준다. 이것을 영업 레버리지(Operating leverage)라 한다.
같은 수요 파도, 다른 이익 파도
평상시에는 세 회사 모두 이익 30을 낸다. 수요가 1% 줄면 팹리스 이익은 약 1.8%, IDM은 약 2.7%, 파운드리는 약 2.8% 준다. 팹리스는 물량이 줄면 파운드리에 내는 돈도 함께 줄지만, 팹은 감가상각을 멈출 수 없다. 팹리스는 위험의 일부를 파운드리에 넘긴 셈이다. 대신 호황에는 반대로 고정비가 큰 쪽이 이익을 더 크게 불린다.
실제로는 파운드리가 이 충격을 줄이는 장치를 갖고 있다. 고객이 수백 곳이라 한 고객의 주문이 줄어도 다른 고객이 메우고, 선단 공정은 장기 계약과 선급금으로 용량을 미리 팔아 둔다. 반대로 고객이 한꺼번에 재고를 줄이는 시기에는 주문이 실제 수요보다 더 크게 줄어든다(3장의 채찍 효과).
얼마나 커야 팹을 짓는가
팹을 가진 쪽이 유리해지는 조건은 하나다. 팹을 꽉 채울 만큼 물량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팹에는 최소 단위가 있다. 노광기·식각기 한 세트가 하루에 처리하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 선단 팹은 대략 월 1만 장 이상 단위로 짓는다. 여기에 공정 자체를 개발하는 비용이 연 수십억 달러씩 붙는다. 파운드리는 이 비용을 수백 고객에게 나누고, 자체 팹은 혼자 진다.
아래 그래프의 가로축은 한 회사가 필요한 월 웨이퍼 수다. 수요 표시를 끌어 자체 팹 원가가 파운드리 가격 아래로 내려오는 지점을 찾는다.
내 물량으로 팹을 지으면 웨이퍼 한 장에 얼마인가
3 nm에서 교차 수요는 월 약 2만 5천 장이다. 이 물량을 혼자 채울 수 있는 칩 회사는 세계에 몇 곳 없다. 그보다 적으면 팹의 대부분이 놀거나, 놀지 않더라도 공정 개발비를 나눌 물량이 부족하다. 파운드리 가격에는 파운드리의 이익이 들어 있지만, 그 이익을 내고도 혼자 짓는 것보다 싸다. 규모의 경제가 파운드리 모델의 핵심이다.
파운드리를 쓰면 무엇을 잃는가
팹리스가 파운드리에 내는 웨이퍼 값에는 파운드리의 이익이 들어 있다. 선단 파운드리의 매출총이익률은 2024년 약 55% 안팎이다. 팹리스는 그만큼을 '이중 마진'(Margin stacking)으로 낸다. 이것이 큰 손실인가는 칩마다 다르다. 판매가에서 다이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IDM이 자기 공정에 들이는 개발비를 몇 개의 칩에 나눌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중 마진 계산기: 팹리스 + 파운드리 vs IDM
AI 가속기처럼 판매가가 다이 원가의 수십 배인 칩에서 파운드리 마진은 판매가의 1~2%에 불과하다. 이때 팹을 갖는 것은 원가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 AP처럼 다이 원가 비중이 큰 칩에서는 마진이 무겁지만, 공정 개발비를 감당할 만큼 많이 팔아야 IDM이 이긴다. 수억 개 단위다.
돈 말고 잃는 것도 있다. 첫째, 용량의 우선순위다. 호황에 파운드리 용량이 모자라면 큰 고객부터 받는다. 2021년 차량용 반도체 부족 때 작은 고객들이 이것을 겪었다. 둘째, 공정 맞춤이다. IDM은 칩에 맞춰 공정을 고칠 수 있지만, 팹리스는 파운드리가 모든 고객에게 주는 공정을 써야 한다. 셋째, 정보다. 설계 파일을 남의 손에 넘긴다. 파운드리가 자기 칩을 팔지 않는다는 약속이 중요한 이유다. 대신 팹리스는 매년 수십억 달러의 설비투자와 공정 개발 위험을 피하고, 그 돈을 설계에 쓴다.
팹라이트: 평균만큼 짓고 나머지는 빌린다
꼭 둘 중 하나일 필요는 없다. 자체 팹을 조금 갖고, 넘치는 수요는 파운드리에 맡기면 어떤가. 자체 팹은 꽉 찰 때 싸고, 파운드리는 쓴 만큼만 낸다. 그렇다면 자체 팹은 얼마나 크게 지어야 하는가. 아래에서 자체 용량 선을 위아래로 끌어 평균 웨이퍼 원가가 가장 낮아지는 곳을 찾는다.
자체 팹은 얼마나 크게 지을까
최적 용량은 대개 평균 수요보다 조금 아래다. 자체 팹 용량 한 단위를 더 짓는 것은 그 용량이 채워질 확률이 고정비/(파운드리 가격 − 변동비)보다 클 때만 이득이다. 기본값에서는 4,000/7,000, 약 57%다. 수요의 바닥은 자체 팹으로, 출렁이는 윗부분은 파운드리로. 이것이 팹라이트(Fab-lite)의 논리이고, 성숙 공정은 자체 팹, 선단 공정은 파운드리에 맡기는 아날로그·차량용 반도체 회사들이 대표적이다.
같은 칩, 두 가지 방식
이제 모든 것을 한데 모은다. 같은 칩을 파는 두 회사가 있다. 한 회사는 기대 수요에 맞춰 자기 팹을 짓고(IDM), 다른 회사는 필요한 만큼 파운드리에서 산다(팹리스). 내년 수요는 아무도 모른다. 수요를 수천 번 뽑아 두 회사의 연 이익이 어떻게 퍼지는지 본다.
몬테카를로: 자체 팹 vs 파운드리, 이익 분포
불확실성이 없으면 물량이 큰 IDM이 이긴다. 파운드리 마진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IDM은 양쪽에서 잃는다. 수요가 넘치면 용량이 모자라 팔 기회를 놓치고, 수요가 꺼지면 빈 팹의 감가상각을 고스란히 낸다. 팹리스는 평균에서 조금 양보하는 대신 꼬리 위험을 파운드리에 넘긴다. 그리고 파운드리는 수백 고객의 수요를 합쳐 그 위험을 평탄하게 만든다. 고객 하나하나의 수요는 출렁여도 합치면 덜 출렁인다. 이것이 분업이 살아남은 이유다.
타깃 AX-1: 노바실리콘은 왜 팹을 짓지 않는가
이제 이 장의 계산을 가상의 팹리스 노바실리콘에 적용한다. AX-1은 3 nm급 공정에서 웨이퍼 한 장당 좋은 다이 약 29개가 나오고, 첫해 40만 개를 팔려면 월 약 1,220장의 웨이퍼가 필요하다.
월 1,220장으로는 팹의 1%를 채운다
3 nm급 팹 한 동(약 200억 달러, 월 10만 장)과 AX-1의 수요를 나란히 놓으면 결론은 분명하다. AX-1이 필요한 웨이퍼는 그 팹 용량의 약 1.2%다.
| AX-1 웨이퍼 수요 | 약 1,220장/월 | 40만 개 / (좋은 다이 약 28.8개 × 패키징 수율 0.95) / 12 |
| 3 nm 팹 한 동 | $20B · 100K장/월 | AX-1만 만들면 가동률 약 1.2% |
| 그 팹을 AX-1만으로 돌릴 때 | — | IND.fab: 연 고정비 약 40억 달러를 약 1.5만 장이 나눠 진다 |
| 파운드리 웨이퍼 가격 | $20,000/장 | 3 nm급 추정치(IND.AX1.waferCost) |
| 다이 원가: 자체 팹 vs 파운드리 | — | 좋은 다이 약 28.8개로 나눈 값 |
| 파운드리에 내는 마진 | — | 매출총이익률 약 55% 가정. 판매가 25,000달러 대비 |
자체 팹이 파운드리 가격과 비슷해지려면 3 nm급에서 월 약 2만 5천 장, AX-1 물량의 약 20배가 필요하다. 그만큼의 칩을 팔 시장이 노바실리콘에게는 없다. 반대로 파운드리에 내는 마진은 AX-1 하나당 수백 달러, 판매가의 약 1.5%다. 노바실리콘은 이 마진을 내고 200억 달러의 고정비와 공정 개발의 위험을 파운드리에 넘긴다. 잃는 것은 돈보다 우선순위다. 선단 공정 용량이 빠듯한 해에 큰 고객에게 밀리면 40만 개라는 목표가 흔들린다.
핵심 정리
- IDM은 설계와 제조를 함께, 팹리스는 설계만, 파운드리는 남의 칩 제조만, OSAT는 후공정만 한다. 팹라이트는 성숙 공정은 자체 팹, 선단 공정은 파운드리를 쓴다.
- 팹 원가의 대부분은 고정비(장비 감가상각)다. 웨이퍼당 원가는 가동률에 반비례해 오르고, 판매가가 낮을수록 손익분기 가동률이 높아진다. 200억 달러 팹은 가동률 90%에서 장당 약 6,750달러, 45%에서 약 10,500달러다.
- 고정비 비중이 큰 사업일수록 수요 변화에 이익이 크게 흔들린다(영업 레버리지). 팹리스는 물량 위험의 일부를 파운드리에 넘긴다.
- 자체 팹이 파운드리보다 싸지려면 최소 팹 단위를 채우고 공정 개발비를 나눌 물량이 필요하다. 3 nm급에서 월 약 2만 5천 장 수준이다. 파운드리는 수백 고객의 물량을 모아 이 규모를 만든다.
- 팹리스가 파운드리 마진을 내는 손실은 칩마다 다르다. 판매가가 다이 원가의 수십 배인 AI 가속기에서는 판매가의 1~2%이고, 싼 칩일수록 무겁다. 돈 외에 용량 우선순위, 공정 맞춤, 설계 정보를 내준다.
- 수요가 불확실할수록 자체 팹은 양쪽 꼬리에서 잃는다(용량 부족, 빈 팹). 자체 용량은 평균 수요보다 조금 아래로 짓고 출렁이는 부분을 위탁하는 팹라이트가 그 중간 해법이다.
- 1987년 순수 파운드리의 등장 이후 팹리스 매출 비중은 1990년 몇 %에서 2024년 약 40%로, 파운드리 매출은 산업의 약 5분의 1로 커졌다. 노바실리콘의 AX-1(월 약 1,220장)은 3 nm 팹 한 동의 약 1%를 채우는 물량이라 팹을 짓지 않는다.
확인 퀴즈
투자비 200억 달러, 월 10만 장인 팹의 웨이퍼당 원가가 가동률 90%에서 약 6,750달러(고정비 몫 약 3,750달러 + 변동비 3,000달러)다. 가동률이 45%로 떨어지면 원가는 약 얼마인가?
평상시 이익이 같은 팹리스(변동비 비중 큼)와 파운드리(고정비 비중 큼)가 있다. 수요가 20% 줄면?
파운드리 가격에는 파운드리의 이익(매출총이익률 약 55%)이 들어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칩 회사가 선단 공정에서 자체 팹보다 파운드리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팹라이트 회사가 자체 팹 용량을 정하는 방식으로 이 장의 모델과 가장 맞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