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산업
로직 칩은 저마다 다르다. 같은 GPU는 한 회사만 만든다. 메모리는 다르다. 삼성전자의 16 Gb DDR5와 SK하이닉스의 16 Gb DDR5는 같은 규격이라 서로 바꿔 끼울 수 있다. 그래서 메모리는 비트(bit)라는 원자재처럼 팔리고, 값은 수요와 공급이 정한다. 공급이 조금만 넘쳐도 값이 반 토막 나고, 조금만 모자라도 두 배가 된다. 이 산업은 그 출렁임 속에서 수십 개 회사가 서너 개로 줄어든 역사이고, 최근에는 HBM(High Bandwidth Memory)이라는, 원자재가 아닌 메모리가 그 규칙을 바꾸고 있다.
- DRAM·NAND·HBM 시장의 크기와 집중도(HHI)를 숫자로 말한다.
- 매출 증가율 ≈ 비트 출하 증가율 + 평균 판매가 변화라는 메모리의 기본 공식을 쓴다.
- 비트 공급이 수요보다 조금 빨리 늘 때 가격이 왜 크게 떨어지는지 탄력성으로 설명한다.
- 메모리 사이클이 로직보다 진폭이 큰 이유와 치킨 게임으로 업체 수가 줄어든 과정을 안다.
- HBM이 웨이퍼를 많이 먹어 범용 DRAM 공급을 조이는 구조를 계산한다.
- AX-1 원가에서 HBM이 차지하는 몫과 공급사 협상력을 따진다.
세 개의 시장, 몇 안 되는 회사
메모리는 크게 둘이다. DRAM(Dynamic RAM)은 전원이 켜져 있는 동안 프로세서 옆에서 데이터를 잠깐 들고 있는 작업대다. 빠르지만 전원이 꺼지면 내용이 사라진다. NAND 플래시(NAND Flash)는 전원이 꺼져도 남는 창고다. SSD와 스마트폰 저장 공간이 여기에 해당한다. HBM은 DRAM 다이를 여러 장 수직으로 쌓아 AI 가속기 바로 옆에 붙이는 DRAM의 한 형태다. 셀 구조와 공정은 MemoryBook이 자세히 다룬다.
2024년 메모리 매출은 약 1,650억 달러로 세계 반도체 매출(약 6,300억 달러)의 약 4분의 1이다. 그중 DRAM이 약 950억 달러, NAND가 약 700억 달러이고, HBM은 DRAM 안에서 약 170억 달러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 수는 놀랄 만큼 적다. 아래 지도에서 막대의 폭은 시장 크기, 블록의 높이는 점유율이다.
메모리 시장 지도: 누가 얼마나 쥐고 있나
블록을 누르면 그 회사의 2024년 매출과 특징이 여기에 나온다.
DRAM은 세 회사가 95% 이상을, HBM은 세 회사가 사실상 전부를 만든다. HHI는 DRAM 약 3,200, HBM 약 4,100으로 어느 쪽이든 이 책의 2010년 비교 기준(2,500 초과)을 훌쩍 넘는다. NAND는 다섯 무리로 나뉘어 상대적으로 덜 집중돼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DRAM의 약 4분의 3, HBM의 약 85%를 가진다. 미국의 마이크론이 셋째이고, 중국의 CXMT와 YMTC가 빠르게 따라오는 중이다.
비트로 파는 산업
메모리 회사의 실적은 두 숫자로 요약된다. 몇 비트를 팔았나(비트 출하(Bit shipment)), 비트당 얼마에 팔았나(평균 판매가(ASP)). 매출은 그 곱이다.
미세화와 3D 적층 덕분에 비트당 원가는 해마다 내려간다. 원가가 내려가니 가격도 길게 보면 내려간다. 아래 그래프는 GB당 가격의 긴 흐름이다. 세로축이 로그라서 같은 높이의 계단이 같은 '배수'를 뜻한다. 두 손잡이를 끌어 원하는 구간의 연평균 변화율을 재 보자.
GB당 가격은 해마다 얼마나 떨어지나
24년 동안 DRAM은 해마다 약 20%, NAND는 약 30%씩 싸졌다. 문제는 그 길이 매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2017~2018년에는 오히려 올랐고, 2019년과 2023년에는 한 해에 30~50%씩 떨어졌다. 원가는 매끄럽게 내려가는데 가격은 계단을 타니, 이익은 크게 출렁인다.
왜 이렇게 출렁일까. 메모리 수요는 가격에 둔하다. 스마트폰 한 대에 들어가는 DRAM 용량은 값이 싸졌다고 금방 두 배가 되지 않는다. 경제학 말로 가격 탄력성(Price elasticity)이 낮다. 탄력성 \(\varepsilon\)이 낮으면 남는 비트를 팔아 치우기 위해 값을 크게 내려야 한다.
비트를 조금 더 만들면 가격은 얼마나 떨어지나
탄력성이 0.5일 때 공급이 수요보다 10%p만 더 늘어도 가격은 약 15% 떨어지고, 비트를 더 팔았는데도 매출이 줄어든다. 메모리 회사가 해마다 "올해 업계 비트 공급 증가율 전망"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반대로 공급을 덜 늘리면 비트를 덜 팔고도 돈을 더 번다. 하지만 혼자만 덜 늘리면 점유율을 잃는다. 이 긴장이 뒤에 나올 치킨 게임의 씨앗이다.
비트는 어디로 가는가
수요 쪽을 보자. DRAM 비트의 가장 큰 고객은 이제 서버다. AI 서버 한 대에는 일반 DRAM만 1~2 TB가 들어가고, 가속기마다 HBM이 따로 붙는다. 스마트폰은 대수가 많지만(연 약 12억 대) 한 대에 약 8 GB 수준이다. NAND는 스마트폰과 SSD가 나눠 쓴다. 아래 원에서 응용 하나를 눌러 그 수요를 늘리거나 줄여 보자. 전체 비트 수요와 가격이 얼마나 흔들리는지가 아래에 나온다.
응용 하나가 흔들리면 메모리 전체가 흔들린다
조각을 누르면 그 응용의 기기당 메모리 용량과 특징이 나온다.
DRAM 비트의 약 40%를 가져가는 서버가 절반만 더 사도 전체 수요가 약 20% 늘고, 공급이 그대로라면 가격은 30% 가까이 뛴다. 2017~2018년의 이른바 '슈퍼사이클'은 클라우드 서버 투자가, 2024~2025년의 반등은 AI 서버가 끌었다. 반대로 스마트폰·PC가 동시에 꺾인 2022~2023년에는 재고가 쌓이며 가격이 폭락했다. 응용이 한쪽으로 쏠릴수록 메모리는 그 응용의 경기를 증폭해서 따라간다.
메모리 사이클: 진폭이 큰 이유
3장에서 반도체 전체의 사이클을 봤다. 메모리는 그 사이클의 가장 거친 부분이다. 가격이 수급에 민감하고(낮은 탄력성), 팹을 짓는 데 2년이 걸리고, 모두가 같은 시점에 같은 신호(가격)를 보고 증설한다. 위쪽 그래프는 실제 메모리 매출의 전년 대비 증가율을, 아래쪽은 그 구조를 흉내 낸 모델을 보여 준다.
메모리 가격 사이클: 공급 규율이 진폭을 정한다
2017년 메모리 매출은 약 61% 늘었고 2019년에는 약 33% 줄었다. 2023년에는 약 29% 줄었다가 2024년에 약 80% 늘었다. 같은 해 메모리를 뺀 반도체 매출은 대체로 ±15% 안에서 움직였다. 모델에서도 같은 것이 보인다. 업계가 가격 신호에 공격적으로 반응할수록, 그리고 증설이 늦게 도착할수록 진폭이 커진다.
2018년 호황기에는 대형 메모리 회사의 영업이익률이 50%를 넘었고, 2023년 불황기에는 같은 회사들이 수조 원 규모의 영업 적자를 냈다. 한 산업 안에서 1~2년 만에 이익률이 이렇게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 최근 메모리 회사들이 "증설보다 수익성"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규율' 쪽으로 옮겨 가려는 시도다. 하지만 규율은 모두가 지켜야 효과가 있고, 한 회사가 깨면 나머지가 손해를 본다.
치킨 게임: 마지막까지 버틴 회사가 이긴다
불황에 모두가 증설을 멈추면 가격이 회복된다. 하지만 혼자 멈추면 원가 경쟁에서 밀리고, 남이 멈출 때 혼자 늘리면 점유율을 가져온다. 그래서 메모리 회사들은 적자 속에서도 투자를 계속하며 누가 먼저 쓰러지는지를 기다렸다. 두 차가 마주 보고 달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치킨 게임(Game of chicken)이다.
| 연도 | DRAM 업계에서 일어난 일(약) |
|---|---|
| 1985 | 일본 업체의 공세 속에 인텔이 DRAM 사업에서 철수한다. 1980년대 중반 DRAM은 미국·일본의 수십 개 회사가 만들었다. |
| 1999 | NEC와 히타치의 DRAM 사업이 합쳐져 엘피다가 된다(2003년 미쓰비시 합류). 한국에서는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합병되고,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로 이름을 바꾼다. |
| 2006 | 인피니언의 메모리 사업이 키몬다로 분사한다. |
| 2007~2008 | 대만 업체들까지 공격적으로 증설한 끝에 DDR2 가격이 원가 아래로 떨어지고, 금융 위기가 겹친다. 업계 대부분이 적자를 낸다. |
| 2009 | 독일 키몬다가 파산을 신청한다(1월). |
| 2012 | 일본 엘피다가 회생 절차를 신청하고(2월) 2013년 마이크론에 인수된다. 같은 해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해 SK하이닉스가 된다. |
| 2013~2016 | 대만 업체들이 마이크론에 흡수되거나 틈새로 물러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세 회사의 DRAM 점유가 90%를 넘는다. |
| 2016~ | 중국 CXMT가 설립되어 DRAM 양산에 들어간다. 새로운 경쟁자가 국가 지원을 받아 등장한 첫 사례다. |
직접 해 보자. 당신은 세 메모리 회사 중 하나를 경영한다. A사는 가격과 관계없이 공격적으로 늘리고, B사는 가격을 보고 신중하게 움직인다. 해마다 증설 폭을 고르고 '1년 진행'을 누른다. 현금이 0 아래로 내려가면 퇴출되고, 그 회사 설비의 절반은 현금이 가장 많은 회사가 사들인다.
치킨 게임: 10년을 버텨라
몇 판 해 보면 규칙이 보인다. 혼자 몸을 사리면 살아남아도 점유율과 원가에서 밀리고, 무리하게 늘리면 가격을 무너뜨려 자기 현금부터 마른다. 버티는 회사는 불황에도 원가가 가장 낮고 현금이 가장 많은 회사다. 그리고 한 회사가 쓰러지는 순간 남은 회사들의 가격이 뛴다. 2009년과 2012년 이후 실제로 그랬다. 업체가 셋으로 줄어든 2013년 이후 DRAM의 이익률은 그 이전보다 구조적으로 높아졌다.
HBM이 바꾼 판도
AI 가속기는 계산보다 데이터를 나르는 속도에 막힌다. 그래서 DRAM 다이를 8~16장 쌓고, 다이를 위아래로 뚫은 수천 개의 구멍(TSV(Through-Silicon Via))으로 연결해, 가속기 바로 옆 인터포저 위에 놓는다. 이것이 HBM이다. 1,024개(HBM4는 2,048개)의 데이터 선을 한꺼번에 써서 스택 하나가 초당 1테라바이트 넘게 나른다. 아래 단면도에서 층을 눌러 각 부분이 무엇인지 보자.
HBM 스택 해부: 높이 쌓을수록 무엇이 어려워지나
층을 누르면 그 부분의 역할과 누가 만드는지가 여기에 나온다.
12단·16단으로 갈수록 다이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아지고, 층이 하나 늘 때마다 접합 불량의 기회가 하나 는다. 층당 99.5%면 16단 스택은 약 92%만 살아남고, 98%면 70%도 안 된다. 불량 스택에는 이미 좋은 DRAM 다이 16장이 들어 있다. HBM 경쟁은 이 적층·접합 기술(열압착 본딩, 매스 리플로, 하이브리드 본딩) 경쟁이기도 하다. 패키징 쪽 이야기는 11장과 PackagingBook을 참조한다.
웨이퍼를 빨아들이는 HBM
HBM은 같은 비트를 만드는 데 일반 DRAM보다 웨이퍼를 훨씬 많이 쓴다. TSV와 넓은 입출력 회로 때문에 다이가 커지고, 적층 수율 손실이 더해지고, 베이스 다이도 따로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대략 일반 DRAM의 약 3배 웨이퍼가 든다고 말한다. 메모리 회사가 웨이퍼를 HBM에 돌리면 범용 DRAM 공급이 줄어든다. 아래 웨이퍼 격자에서 HBM으로 돌릴 몫을 끌어 보자.
HBM에 웨이퍼를 돌리면 범용 DRAM이 비싸진다
HBM 비중을 15%에서 30%로 올리면 HBM이 차지하는 비트는 몇 %에 불과한데도 범용 DRAM 가격이 약 30% 오른다. 2024~2025년 메모리 시장이 정확히 이랬다. AI 가속기용 HBM 수요가 웨이퍼를 빨아들이자, PC·스마트폰용 범용 DRAM까지 빠듯해졌다. HBM은 범용 DRAM과 달리 고객과 1년 단위로 물량·가격을 미리 정하는 경우가 많아, 메모리 회사에 원자재가 아닌 '주문 제작' 사업의 성격을 더한다. 그리고 그 기술을 가장 먼저 양산 수준으로 끌어올린 회사가 점유율을 쓸어 담았다. 2024년 HBM 점유는 SK하이닉스 약 55%, 삼성전자 약 30%, 마이크론 약 15%로 추정된다.
AX-1의 메모리: 144 GB의 값
9장에서 AX-1의 좋은 로직 다이 하나가 약 700달러라는 것을 계산했다. 그 옆에 붙을 HBM은 6스택, 스택당 24 GB(24 Gb 다이 8단)로 모두 144 GB다. GB당 약 12달러면 HBM만 약 1,728달러, 로직 다이의 약 2.5배다. 범용 DRAM이 GB당 약 3달러 안팎이니 같은 용량을 일반 DRAM으로 산다면 400~500달러 수준이다. HBM의 프리미엄은 약 4배다.
노바실리콘은 이 HBM을 누구에게서 사는가. 선택지는 세 곳뿐이고, 가속기 회사는 각 공급사의 HBM을 따로 시험하고 인증해야 한다. 인증된 공급사가 적을수록 공급사의 협상력이 커진다. 아래에서 공급사 카드를 눌러 인증을 빼거나 넣어 보자.
AX-1 원가의 40%: 공급사가 셋뿐일 때
인증된 공급사가 셋이면 경쟁 가격(프리미엄 없음), 둘이면 약 25%, 하나면 약 60%의 프리미엄을 붙인다고 가정한다.
칩 원가의 40%는 메모리다
AX-1의 HBM은 6스택 × 24 GB = 144 GB, GB당 약 12달러로 약 1,728달러다. 로직 다이(약 700달러)의 약 2.5배이고, 패키징·테스트·보드를 더한 칩 하나 원가 약 4,257달러의 약 40%를 차지한다. 같은 용량의 범용 DRAM이라면 400~500달러 수준이니 HBM 프리미엄은 약 4배다. 공급사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세 곳뿐이고 셋 다 인증받아도 HHI가 4,000을 넘는 고집중 시장이다. 인증된 공급사가 하나로 줄면 HBM만으로 원가가 수백~1,000달러 늘 수 있다. 첫해 40만 개를 만들려면 HBM 스택 240만 개가 필요하다.
핵심 정리
- 2024년 메모리 매출은 약 1,650억 달러(DRAM 약 950억, NAND 약 700억)로 반도체의 약 4분의 1이다. DRAM은 세 회사가 95% 이상, HBM은 세 회사가 사실상 전부를 만든다.
- 메모리는 규격이 같은 원자재처럼 팔린다. 매출 증가율 ≈ 비트 출하 증가율 + 가격 변화율이고, 장기적으로 GB당 가격은 DRAM 연 약 20%, NAND 연 약 30%씩 내려왔다.
-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낮아 공급이 수요보다 조금만 많아도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메모리 매출은 한 해에 ±30~80%씩 움직인다.
- 불황 속 증설 경쟁(치킨 게임)으로 키몬다(2009)·엘피다(2012)가 쓰러지며 DRAM은 세 회사 체제가 되었다. 국가 지원을 받는 새 참가자는 이 구도를 다시 흔든다.
- HBM은 비트당 웨이퍼를 약 3배 쓴다. 웨이퍼가 HBM으로 가면 범용 DRAM 공급이 조여 가격이 오른다. HBM은 메모리에 '주문 제작' 성격을 더했다.
- AX-1의 HBM 144 GB는 약 1,728달러로 칩 원가의 약 40%다. 공급사가 셋뿐이라 인증 공급사 수가 곧 협상력이다.
확인 퀴즈
1. 메모리 회사가 DRAM 웨이퍼 중 HBM에 돌리는 비중을 늘렸다. HBM은 같은 비트에 웨이퍼를 약 3배 쓴다. 범용 DRAM 시장에서 가장 그럴듯한 결과는?
2. 올해 업계 비트 수요가 20%, 비트 공급이 30% 늘었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0.5로 낮다면 가격과 매출은?
3. 메모리 불황기에 회사들이 적자를 내면서도 투자를 계속해 온 가장 큰 이유는?
4. AX-1은 24 GB HBM 스택 6개를 GB당 약 12달러에 산다. 칩 하나의 원가가 약 4,257달러라면 HBM의 비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