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의 지리
반도체 가치사슬에는 모든 단계에서 1등인 나라가 없다. 설계 도구와 설계는 미국, 장비는 미국·일본·유럽, 메모리는 한국, 첨단 제조는 대만, 패키징·테스트는 중국과 동남아에 몰려 있다. 이 장은 그 분업을 지도 위에 펼치고, 칩 한 개가 국경을 몇 번 넘는지, 한 지역이 멈추면 무엇이 서는지 직접 끊어 본다.
- 가치사슬 단계마다 어느 지역이 부가가치를 얼마나 가져가는지 지도에서 읽는다.
- 집중도(HHI)로 어느 단계·품목이 한곳에 몰려 있는지 숫자로 비교한다.
- 칩을 만드는 곳과 칩을 사 가는 곳이 왜 다른지 설명한다.
- AX-1이 지나는 경로에서 관여하는 나라 수와 국경을 넘는 횟수를 센다.
- 한 지역이 멈췄을 때 어느 단계가 막히고 생산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계산한다.
단계마다 1등이 다르다
2019년 반도체 산업이 만든 부가가치를 본사 소재 지역별로 나누면 미국 약 39%, 일본 약 14%, 한국 약 12%, 유럽·대만·중국이 각각 약 10%다(SIA·BCG, 2021년 보고서). 어느 한 지역도 절반을 넘지 않는다. 이 숫자만 보면 공급망은 꽤 고르게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치사슬을 단계별로 쪼개면 그림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래 지도에서 오른쪽 버튼으로 단계를 바꿔 보자. 버블의 넓이가 그 단계에서 각 지역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점유다. 점선은 버블을 실제 위치에서 조금 떼어 놓았다는 표시다(동아시아 네 지역이 겹치지 않게).
가치사슬 세계 지도: 단계마다 누가 1등인가
지역을 눌러 보자
버블을 누르면 그 지역이 여덟 단계에서 각각 얼마를 차지하는지 여기에 펼쳐진다.
EDA·핵심 IP는 미국이 약 74%, 메모리는 한국이 약 58%, 패키징·테스트는 중국(약 38%)과 동남아(약 21%)가 60%에 가깝다. 전체 지도에서 고르게 보이던 점유가 단계마다 한두 지역으로 쏠린다. 공급망의 지리를 읽는 첫 번째 열쇠는 나라가 아니라 단계를 보는 것이다.
이렇게 나뉜 이유는 단계마다 필요한 자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웨이퍼 제조는 부가가치의 약 19%를 만들지만 산업 전체 설비투자의 약 64%를 쓴다. 반대로 EDA·IP와 로직 설계는 설비는 거의 쓰지 않는 대신 산업 연구개발비의 절반 이상을 쓴다. 설계는 인재와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있는 곳으로, 제조는 거대한 자본과 숙련 공정 인력이 있는 곳으로, 조립·테스트는 넓은 공장 부지와 전자제품 조립 생태계가 있는 곳으로 흘러갔다.
얼마나 몰려 있나: 집중도
점유율 표를 숫자 하나로 줄이는 흔한 방법이 허핀달-허시먼 지수(HHI, Herfindahl–Hirschman Index)다. 참여자 점유율(%)을 제곱해서 더한다.
아래 사다리는 단계·품목을 HHI가 높은 순서로 세운다. 위쪽 버튼으로 "단계 × 지역"(앞 지도의 숫자)과 "품목 × 회사"(장비·소재·제조의 세부 품목)를 바꿔 보자. 줄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 조각마다 누구인지 나온다.
집중도 사다리: 어디가 가장 한곳에 몰려 있나
줄을 눌러 보자
HHI, 1위 점유(CR1), 상위 3곳 점유(CR3)와 그 의미가 여기에 나온다.
지역으로 보면 웨이퍼 제조는 HHI 약 1,550으로 가장 고른 단계다. 대만·한국·일본·중국이 각각 15~20%씩 나눠 가진다. 하지만 같은 웨이퍼 제조에서 7 nm 이하 첨단 로직만 떼어 보면 한 회사가 약 90%를 쥔다. 2019년 기준으로 10 nm 이하 로직 생산능력은 약 92%가 대만, 약 8%가 한국에 있었다(SIA·BCG). 평균이 위험을 감춘다.
SIA·BCG는 가치사슬 전체에서 한 지역이 65% 이상을 차지하는 지점이 50곳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그 지점 하나하나가 이 장 끝에서 끊어 볼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 후보다.
만드는 곳과 사 가는 곳
판매 통계에서 중국은 세계 반도체 구매의 약 30%(2024)를 차지한다. 그런데 중국의 로직 설계 점유는 약 6%, 웨이퍼 제조는 약 16%다. 칩은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그 칩을 기판에 꽂아 스마트폰·PC·서버를 조립하는 공장이 있는 곳으로 '팔려' 간다.
아래 흐름도는 네 기둥을 나란히 세운다: 로직 설계, 웨이퍼 제조, 패키징·테스트의 부가가치 점유와 칩 구매 지역. 같은 지역끼리 띠로 이었다. 띠가 굵어지면 그 지역의 몫이 늘어나는 것이다. 띠나 기둥을 눌러 지역 하나를 따라가 보자.
설계에서 구매까지: 지역별 몫이 어떻게 바뀌나
지역을 골라 보자
네 기둥에서 그 지역의 몫과 그렇게 된 이유가 여기에 나온다.
미국의 띠는 설계에서 굵고(약 67%) 제조·패키징으로 가며 가늘어지다가(약 12%, 2%) 구매에서 다시 굵어진다(약 31%).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회사가 칩을 대량으로 사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반대다. 설계 약 6%에서 시작해 패키징·테스트 약 38%, 구매 약 30%로 굵어진다. 세계 전자제품 조립 공장이 모여 있어 칩이 중국으로 들어가지만, 그 상당수는 완제품이 되어 다시 다른 나라로 수출된다.
거점 지도: 점유는 결국 몇 개 도시다
국가 단위 점유율은 실제로는 몇십 개 도시로 좁혀진다. 아래 지도는 이 책이 쓰는 세계 주요 거점 35곳이다. 모양은 거점의 종류, 색은 지역이다. 위쪽 버튼으로 세계·동아시아·미국·유럽을 오가며 확대해 보고, 종류를 골라 걸러 보자.
거점 지도: 팹과 설계 센터는 어디에 있나
거점을 눌러 보자
이름, 하는 일, 가장 가까운 다른 거점까지의 거리가 여기에 나온다.
로직 팹과 메모리 팹을 켜면 점의 대부분이 동아시아의 좁은 띠(대만 서해안, 한국 수도권 남부, 중국 장강 하류, 일본 규슈·혼슈)에 몰린다. 설계를 켜면 무게 중심이 미국 서부와 영국, 인도로 옮겨 간다. 장비 거점은 네덜란드 남부, 독일 남부, 도쿄, 미국 서부다. 같은 산업인데 단계마다 지도가 다르다.
왜 한곳에 모이는가
팹은 흩어지지 않고 뭉친다. 장비 회사의 현장 엔지니어가 몇 시간 안에 와야 하고, 특수 가스와 화학 약품을 배관과 탱크로리로 받아야 하며, 하루 수만 톤의 초순수와 수백 MW의 전력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 숙련 인력은 이미 팹이 있는 곳에 산다. 대만의 신주 과학단지(1980년 설립)와 한국의 기흥·화성·평택·이천 축이 그렇게 자랐다.
아래 지도에서 원의 중심을 끌어 옮기고 반지름을 바꿔 보자. 원 안에 들어오는 거점 수와 원의 넓이가 바로 나온다. 프리셋 버튼은 대표적인 클러스터로 바로 간다.
클러스터 밀도: 반경 100 km 안에 무엇이 있나
한국의 메모리·파운드리 거점 다섯 곳(기흥·화성, 평택, 이천, 용인, 청주)은 반경 60 km 남짓 안에 들어간다. 대만의 신주·타이난·가오슝 팹은 반경 200 km 원 하나에 담긴다. 대만 해협은 폭이 약 130~180 km다. 세계 첨단 로직 생산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약 325 km)보다 짧은 띠 위에 있다.
뭉치면 효율이 오르지만 같은 사건을 함께 맞는다. 2021년 대만은 수십 년 만의 가뭄으로 산업용수 공급을 줄였고, 팹들은 탱크로리로 물을 실어 날랐다. 지진·태풍·정전 같은 자연 재해도 지역 단위로 온다. 클러스터의 강점과 약점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AX-1은 국경을 몇 번 넘는가
이 책이 따라가는 가상의 AI 가속기 AX-1을 지도 위에서 움직여 보자. 설계 도구와 IP가 미국 본사로 모이고, 설계 파일이 대만 파운드리로 넘어가고, 네덜란드·미국·일본의 장비와 일본의 소재가 대만 팹으로, 한국의 HBM이 대만 패키징 라인으로 모인다. 완성된 모듈은 서버에 꽂혀 미국 데이터센터로 간다.
점선은 데이터(설계 파일·라이선스)가, 실선은 물건이 이동하는 길이다. 재생을 누르면 단계가 하나씩 진행되고 아래 숫자가 쌓인다. 테스트와 서버 조립 위치를 바꾸면 경로와 국경 횟수가 달라진다.
AX-1의 여정: 열 단계, 일곱 나라
IND.AX1.route를 바탕으로 대표 도시 하나씩을 골랐다(가상 시나리오). 리드타임은 3 nm 웨이퍼 공정 약 100일, 2.5D 패키징 약 30일, 테스트 약 7일, 서버 조립 약 14일, 설치 약 10일, 국경을 넘는 물건 이동마다 운송·통관 약 4일을 더한 교육용 가정이다. 거리는 대원 거리 합이다.기본 경로에서 AX-1에는 미국, 영국, 인도, 네덜란드, 일본, 대만, 한국의 일곱 나라가 관여하고, 국경을 아홉 번 넘는다. 데이터가 세 번, 물건이 여섯 번이다. 테스트를 말레이시아로, 서버 조립을 멕시코로 옮기면 아홉 나라, 열한 번으로 늘어난다. 실제 칩은 이보다 훨씬 많이 넘는다. 장비 하나에도 수천 개 부품이 여러 나라에서 오고, 가스·화학 약품·기판도 각각 제 경로가 있다.
물건이 모이는 곳은 대만 한 곳이다. 장비, 소재, HBM이 모두 대만으로 들어오고 거기서 완성된 모듈이 나간다. 데이터의 출발점은 미국이다. 이 비대칭이 다음 절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 지역이 멈추면 무엇이 서는가.
한 지역이 멈추면
공급망의 지역 집중은 이미 여러 번 시험을 받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를 만드는 르네사스 나카 공장을 멈춰 세계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냈고, 같은 공장은 2021년 3월 화재로 다시 멈췄다.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 한파 때는 정전으로 오스틴 일대 팹들이 며칠씩 섰다. 2022년에는 반도체용 네온 가스의 상당 부분을 정제하던 우크라이나 업체들이 가동을 멈춰 가스 가격이 크게 뛰었다(보도치).
아래 지도에서 지역 버블을 눌러 꺼 보자. 꺼진 지역의 공급이 모두 사라졌다고 가정하면 가치사슬 여덟 단계의 남는 몫과 AX-1 열 단계의 공급 상태가 바로 바뀐다. AX-1은 가장 약한 단계만큼만 만들 수 있다.
단일 장애점: 한 지역을 끄면 AX-1은 몇 개 나오나
대만을 끄면 가치사슬 여덟 단계 가운데 웨이퍼 제조의 약 20%, 패키징·테스트의 약 19%가 사라진다. 비율로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AX-1처럼 3 nm급 공정이 필요한 칩은 공급의 약 90%를 잃어 생산 가능량이 약 10%로 떨어진다. 일본을 끄면 부가가치는 약 14%만 빠지는데 코터·현상기와 ABF 필름이 막혀 AX-1은 약 5%만 나온다. 유럽을 끄면 EUV 노광기가 사라져 새 3 nm 생산능력을 만들 길이 아예 없어진다.
이 시뮬레이터가 보여 주는 것은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가'다. 부가가치가 작아도 대체할 공급자가 없는 품목이 사슬 전체를 멈춘다. 그래서 각국은 이 지점들을 자국 안에 두려 하거나 반대로 상대의 지점을 협상 수단으로 쓰려 한다. 그 정책과 비용이 14장의 주제다.
타깃 파일: AX-1의 지도
일곱 나라, 국경 아홉 번, 그리고 대만 한 곳
노바실리콘(가상)의 AX-1은 기본 경로에서 미국·영국·인도·네덜란드·일본·대만·한국 일곱 나라를 거친다. 국경을 넘는 이동은 아홉 번(데이터 3, 물건 6)이고, 물건의 이동 거리는 대원 거리로 약 4만 km다. 테스트와 서버 조립을 말레이시아·멕시코로 옮기면 아홉 나라, 열한 번이 된다. 웨이퍼 투입에서 데이터센터 설치까지는 약 24주가 걸린다(교육용 가정).
모든 물건이 대만 한 곳으로 모였다가 나간다. 지역 하나를 끄면 AX-1의 연간 생산 가능량(목표 40만 개)은 이렇게 바뀐다: 대만 정지 약 4만 개(3 nm 제조의 약 90% 상실), 한국 정지 약 6만 개(HBM의 약 85% 상실), 일본 정지 약 2만 개(ABF 필름·코터), 미국 정지 약 8만 개(설계 인력·장비), 유럽 정지 0개(EUV, CPU 코어 IP). 중국을 끄면 테스트·서버 조립 일부만 줄어 약 34만 개가 남는다.
핵심 정리
- 2019년 반도체 부가가치는 미국 약 39%, 일본 약 14%, 한국 약 12%, 유럽·대만·중국 약 10%씩으로 고르게 보이지만, 단계별로는 EDA·IP 미국 약 74%, 메모리 한국 약 58%, 패키징·테스트 중국·동남아 약 59%처럼 한두 지역에 쏠린다.
- 단계마다 필요한 자원이 다르다. 웨이퍼 제조는 산업 설비투자의 약 64%를, EDA·IP와 로직 설계는 연구개발비의 절반 이상을 쓴다. 그래서 설계와 제조가 다른 곳에 자리 잡았다.
- HHI로 보면 지역 기준 웨이퍼 제조는 가장 고르지만(약 1,550), 7 nm 이하 로직·EUV·ABF 같은 품목은 회사 하나가 90% 이상을 쥔다. 평균이 단일 장애점을 감춘다.
- 칩 구매 통계는 조립 공장의 위치를 센다. 중국은 설계 약 6%이지만 구매는 약 30%(2024)다. 미국은 설계 약 67%, 구매 약 31%다.
- 팹은 인력·공급사·물·전력 때문에 뭉친다. 한국 메모리 거점은 반경 60 km 남짓, 대만 팹은 반경 200 km 안에 있다. 효율과 공동 위험이 함께 온다.
- AX-1은 7개국을 거쳐 국경을 9번 넘는다. 대만을 끄면 생산 가능량이 약 10%, 일본은 약 5%, 유럽은 0으로 떨어진다. 부가가치가 작아도 대체할 수 없는 품목이 사슬을 멈춘다.
확인 퀴즈
1. SIA·BCG의 2019년 부가가치 점유에서, 한 지역의 점유가 가장 높은(가장 한쪽으로 쏠린) 단계는?
2. 중국의 로직 설계 점유는 약 6%인데 세계 칩 구매에서는 약 30%(2024)를 차지한다. 가장 큰 이유는?
3. 어느 품목의 점유가 A사 60%, B사 30%, C사 10%다. HHI와 해석으로 맞는 것은?
4. 이 장의 모델에서 유럽을 끄면 AX-1 생산 가능량이 0이 된다. 그 직접적인 이유는?